[방송대본 71호]내레이션원고

[13316]

analesson Date. 2007-12-05 17:11:39 Hit. 41604
휴먼다큐 사랑 (안녕, 아빠)

2007년 2월 3일
우리집에 모처럼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딸아이 규빈이의 생일이었다.
종호씨는 나의 오랜 친구이자 내 남편의 동생, 아이들의 막내삼촌
흰 초코렛 케이크는 규빈이가 제일 좋아하는 거였다.
웃는 눈매가 아빠를 꼭 닮은 규빈이
생일마다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선물하는 건 남편의 기쁨이었다.
며칠 전 나는 그 역할을 시동생 종호씨에게 부탁했다
이 세상에서 규빈이를 가장 사랑했던 남편은 지금 이 곳에 올 수 없다.
그런데 남편이 준비한 선물이 있었다.
규빈이를 위해 쓴 영상 편지
그러나 이것이 그의 작별 인사가 되고 말았다
지난 일년동안 암 투병을 해왔던 남편은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 둘
두 아이의 다정한 아빠였으며 내 전부였던 사람
아직도 모든 것이 꿈만 같다.
지난 일 년, 암과 싸우며 우리 가족은 서로를 더 사랑했다
이것은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내가 이별한 기록이며 가장 사랑한 이야기다.

작년 10월, 우리 가족은 아직 희망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남편 준호씨 스스로 희망을 보여줬다.
무슨 놀이를 하든, 규빈이 보다 더 신나고 더 재밌어하고
아이들이 병원에 올 때면, 아픈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지난 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 규빈이
두 살 터울의 큰 아이 영훈이 역시 아빠의 병이 심각한 줄 몰랐다.
모여 앉으면 우리는 종종 그 곳이 암 병동인 것도 잊었다.
준호씨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해 1월
남은 시간은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이미 암을 이겨낸 적이 있었다.
99년 좌측 대장에서 암이 발견됐지만 절제 수술을 받고 7년을 건강하게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대장뿐이 아니었다.
암은 십이지장과 위장까지 전이 되어있었다.
암의 위력은 대단했다.
내장을 온통 쥐어짜는 고통이 하루에도 수차례
진통제로도 쉽게 잡히지 않는다.
그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안고 그 고통을 견뎠다.
우리는 어떻게든 이겨내야 했다.
우리에게는 아이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