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평상시 거의 이어폰을 귀에 끼고 살다시피 한다. 늘 듣는 데 집중하다보니 가끔 눈앞에서 친구의 인사를 놓칠 때가 많다. 친구는 도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듣느냐고 묻는다. 그 때 내가 듣던 음악은 우리에겐 좀 생소한 ‘후미’라는 음악이었다.
‘몽골 전통음악인데 소리 내는 방식이 특이하고 초원지대에서 부르던 노래’라는 설명을 덧붙이면 대개는 ‘취향 한번 독특하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후미(Khoomei)만 뺀다면 내 음악 취향이 그리 독특한 건 아니다. 아이돌 노래 따라 부르기를 좋아하고 랩도 즐겨 듣는다. 방송 준비를 하면서 공부 삼아 듣는 FM라디오 덕에 친숙해진 가벼운 클래식도 좋아한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음악을 골라듣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후미는 마음을 가라앉혀야 할 때, 집중해야 하는데 마음이 부산하거나 떨쳐버려야 할 것들이 쌓여 있을 때 특별히 골라듣는 음악이다. 솔직히 말해 아나운서 준비를 하면서 수업에 오는데 걸리는 약 30분간 집중적으로 후미를 듣는다. 늘 제멋대로 내달리곤 하는 나의 통제가 안 되는 목소리를 이 음악이 진정시켜줄 것 같은 생각에서 듣기 시작했다. 뉴스 리딩을 할 때 확실히 후미 효과라고 생각될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호흡 조절이 수월해지고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면서 불필요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도 방지해 주는 느낌이다.
눈을 감고 후미를 들으면 하늘과 맞닿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드넓은 벌판과 멀리 무리를 이루면서 달리는 말들, 밤이면 별이 쏟아질 듯 총총하다는 몽골의 하늘이 떠오른다.
가본 적도 없고 별 관심도 없던 몽골의 음악이 어떻게 내게 다가왔을까?
얼마 전 한 TV프로그램에 몽골 전통음악을 하는 가수들이 나온 적이 있었다. 우람한 어깨와 두꺼운 목, 보통 사람 허벅지만한 팔뚝을 가진 그들을 보면서 ‘과연 초원을 누비던 칭기즈칸의 후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후미’를 처음 대한 느낌은 상당히 원시적이고 아련했으며 투박하고 낯설었음에도 이상하게 여운이 길게 남았다. 그 이후 동영상을 찾아 듣기를 반복하고 나서 스마트폰 음악파일에 저장하기에 이르렀다.
후미는 발성 자체가 아주 특이한 음악이다. 두 가지 이상의 소리를 동시에 내기 때문에 영어로 overtone polyphonic 이라고 하는데 이런 발성으로 하는 노래를 overtone singing이라 부르고 후미가 이에 해당한다.
저음의 중후함을 바탕으로 가볍고 산뜻한 고음이 중첩된다. 동시에 두 개의 음을 낸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후미의 고수들은 무려 6개의 각기 다른 목소리를 동시에 낼 수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가치를 인정받은 이 창법은 성대로 지속적인 기본 저음을 만드는 동시에 입술과 입안의 공간을 조절하여 다른 음역대의 소리를 연출한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능력에 따라 다양한 화음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며 성대를 누르고 입 등 여러 기관에 엄청난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적합한 음악이라 한다.
후미는 자연의 소리를 내고 싶었던 몽골 조상들의 자연 성대모사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있다. 초원에는 햇살도 있고 바람도 있다. 들판의 풀들은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강풍에 울부짖는다. 벌판을 가르는 말이 기분 좋게 뿜어내는 ‘히이잉~’ 하는 소리도 있고 저녁이면 가냘픈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옛날 몽골 사람들은 풀 소리와 바람소리, 말의 울음소리를 한꺼번에 내고 싶었던 걸까? 가장 낮은 음으로 구름이 몰려드는 초원의 무거운 공기를 표현했다면 조금 높은 음으로 바닥에 몸을 눕히는 풀들을, 더 높고 가벼운 음에다 분주히 날갯짓을 하는 나비를 묘사했을지도 모른다. 베토벤이 전원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냇가의 시냇물은 바이올린과 첼로로, 새의 지저귐은 피콜로라는 악기를 이용한 것을 떠올리면 후미는 인간의 목소리 하나로 몇 개의 악기를 대신한 아주 실용적인 오케스트라인 셈이다.
유럽인들은 몽골제국의 기병 군단을 ‘화살도 뚫을 수 없는 구리 이마에 강철 가슴을 가진 지옥의 군대’라고 묘사한다. 과연 그들은 막강 기마군이었고 잔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몽골제국의 황제 칭기즈칸 역시 초원의 정서를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초원의 자식이었고 기나긴 정복 전쟁 중에 익숙하게 들어왔던 풀벌레 소리를 벗 삼아 휴식을 취하지 않았을까? 혹시 후미 연주자를 불러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는 않았을까?
이 음악이 내게 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후미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련이 따른다는 것이다. 후미 연주자들은 반복된 훈련으로 여섯 가지나 되는 음을 동시에 낸다는데 나도 그들처럼 노력한다면 한 가지 톤은 완벽하게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르침을 얻는다.
후미와 창법이 비슷한 전통음악을 가진 투바족은 천 명 중 단 한 명만이 후미 가창이 가능하고 오랜 수련을 거치는 동안 비강 공명기관에 변형이 일어나면서 비로소 소리가 완성된다고 하니 연마 적공의 세월이 아득하게 느껴지면서도 소리 공부를 하는 나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 같다.
내게 몽골의 초원은 미국이나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심정적으로 훨씬 멀리 떨어져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탄생한 특이한 음악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면 태어날 때 지녔던 몽고반점의 인연이 예사 인연은 아닌 듯하다.
https://youtu.be/aGzZi3HzZpM?list=PLhtu0xhDRnEO0ZFvO6ink9-3eNJmEcrLa
(유튜브 영상- 몽골 후미)